호주 부동산 시장이 뚜렷한 양극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시드니와 멜버른의 집값 하락세가 5월 들어 더욱 가팔라졌다. 코탈리티(구 코어로직)가 발표한 5월 주택가격지수(HVI)에 따르면 전국 지수는 보합(0.0%)에 그쳤으며, 시드니 주택 가치는 한 달 사이 0.9% 하락하고 멜버른은 0.8% 떨어졌다. 이는 수개월째 이어지는 하락 흐름이 더욱 심화된 결과다.
반면 브리즈번과 퍼스는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퍼스와 다윈은 강한 월간 상승률을 기록했고, 브리즈번과 애들레이드도 꾸준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동부 대도시와 중소 규모 주도(州都) 사이의 격차가 2026년 내내 부동산 시장의 핵심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웨스트팩의 최신 부동산 가격 전망을 바탕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시드니의 중간 주택 가격은 올해 말까지 약 3만 달러 추가 하락할 수 있으며, 멜버른은 약 1만 8천 달러 더 내려갈 수 있다. 코탈리티 데이터를 기준으로 시드니 중간 주택 가격은 이미 2026년 첫 4개월 동안 약 1만 9천 달러 하락한 상태다. 시드니 중간 주택 가격이 여전히 160만 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정도 하락폭이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집값이 내려가도 많은 예비 구매자들이 오히려 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졌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집값 하락 폭보다 대출 한도 감소 폭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시드니 구매자들이 올해 잃은 대출 여력이 집값 하락으로 얻은 이익을 초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호주 전역의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 문제도 실수요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 전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신규 주택 38만 채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며, 건설 비용 상승과 노동력 부족으로 2026년 한 해에만 공급이 11%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투자자 수요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2026년 연방 예산안에 따라 기존 주택에 대한 네거티브 기어링이 2027년 7월부터 신규 주택에만 허용되고, 양도소득세(CGT) 50% 할인 제도도 인플레이션 연동 방식으로 전환된다. 코탈리티는 이러한 세제 변화와 그간 누적된 투자자 규제 강화가 맞물려 투자 수요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미 투자자 수요가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정책 변화는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AMP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셰인 올리버 박사는 더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30년간 호주 주택 시장의 장기 상승 사이클, 이른바 '슈퍼사이클'을 이끌어온 동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 규제 완화, 저금리, 높은 이민 유입, 투자자 세제 혜택, 맞벌이 가구 증가에 따른 구매력 확대 등이 지난 30년간 집값 상승을 이끈 핵심 요인이었지만, 이제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씩 역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올리버 박사는 주택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슈퍼사이클의 완전한 종료를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고 덧붙였다.
AMP는 2026년 전국 평균 주택 가격이 약 1% 하락하고, 2026~27년에 걸쳐 약 5%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을 수정했다. 이는 당초 약 3% 성장을 예상했던 것에서 크게 후퇴한 수치다. 또한 전국 임대료는 5월에 0.6% 상승해 4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전국 공실률이 1.5%로 낮게 유지되는 가운데 임대 수요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집값은 내려가도 임대료는 오르는 이중고가 계속되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임차 시장에 머무는 이들의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시드니와 멜버른의 집값 하락이 실수요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리 부담, 공급 부족, 세제 변화, 임대료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호주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구조적 전환점에 서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