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빅토리아주 해안 마을 포트페어리에서 30년 넘게 유리공예를 해온 작가 A씨는 약 일주일 전부터 낯선 이들의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메일 한 통이었다. 발신인은 같은 마을의 다른 유리공예 작가에게서 유리 제품을 구입했는데 영수증을 받지 못했다며, 해당 작가와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A씨는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냥 무시했다"고 말했다.</p> <p>하지만 다음 날에는 직접 전화까지 걸려왔다. 발신인은 포트페어리에 '엘리너 화이트모어'라는 유리공예 작가가 있는지 물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연을 가진 작가라고 했다. A씨는 1993년부터 이 지역에서 활동해왔지만 그런 이름의 작가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전화기 너머로 "저는 포트페어리의 유일한 유리공예 작가이고, 저도 살아있고 제 아내도 살아있습니다"라고 답했다.</p> <p>이후 며칠 동안 A씨에게는 같은 내용의 문의가 계속 이어졌다. 취재 결과, 지역 예술가 단체와 예술 지원 기관 모두 '엘리너 화이트모어'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지역 행정구역인 샤이어 측도 여러 선거인 명부를 확인했지만 해당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p> <p>이 모든 혼란의 배후에는 정교하게 꾸며진 가짜 온라인 쇼핑몰이 있었다. 해당 사이트는 '엘리너 화이트모어'라는 가상의 유리공예 작가가 직접 만든 해양 테마 유리잔 8개 세트를 250달러에 판매한다고 홍보했다. 작가의 남편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감성적인 사연까지 곁들였는데, 이 이야기와 함께 게시된 이미지들은 모두 AI로 생성된 것이었다. 해당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는 홍콩에 본사를 둔 AI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로 확인됐다.</p> <p>소비자 권익 단체인 컨슈머 액션 로 센터의 정책·캠페인 부문 부국장 메그 달링은 이 같은 사례를 '유령 쇼핑몰' 사기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설명했다. 유령 쇼핑몰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판매 의사가 없는 상품을 그럴듯한 스토리와 이미지로 포장해 소비자를 속이는 가짜 온라인 쇼핑몰을 말한다. 달링 부국장은 이런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 대부분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거나, 운이 좋아도 조잡한 모조품을 받는 데 그친다고 밝혔다.</p> <p>해당 가짜 쇼핑몰의 광고는 호주 뉴스 사이트에도 버젓이 게재됐다. AI 주식 거래 봇, 수제 도마, 다이어트 제품 광고 등과 함께 노출됐으며, 대부분의 광고 썸네일에는 AI 생성 표시가 붙어 있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A씨는 "노인들을 주로 노리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p> <p>달링 부국장은 디지털 플랫폼들이 이런 광고를 차단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단일한 해결책은 없으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 제정과 사기 방지 체계 구축 등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온라인 쇼핑 시 호주 사업자 번호(ABN) 기재 여부, 이미지의 AI 생성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할 것을 소비자들에게 당부했다.</p> <p>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올해 유령 쇼핑몰 관련 신고 건수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지만, 소비자법상 기업의 오해를 유발하는 행위나 허위 주장은 금지돼 있다고 밝혔다. ACCC는 지난해 유령 쇼핑몰에 대한 경고를 발령하고 쇼피파이(Shopify)와 메타(Meta)에 의심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조사와 조치를 요청했으며, 그 결과 10여 개의 의심 유령 쇼핑몰이 운영을 중단했다고 전했다.</p> <p>리저널 아츠 빅토리아의 커뮤니케이션·참여 담당 이사 케이트 게리첸은 이번 사건이 실제 예술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 가짜 사이트에서 나쁜 경험을 한 소비자들이 진짜 예술 작품 구매를 꺼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빅토리아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땅과 연결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진짜 이야기들이 훼손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한 AI의 확산으로 예술가의 동의, 저작권 귀속, 투명성 문제가 이미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기 사건은 AI가 낳는 또 하나의 해악이라고 지적했다.</p> <p>한편 A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온라인 구매에 더욱 신중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은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한 고객에게만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며, 작가와의 직접적인 교류가 주는 가치를 강조했다. "그게 훨씬 더 개인적인 경험이 된다. 온라인에서 '이거면 되겠지' 하고 고르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업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지만 여전히 걱정이 된다는 그는 이번 사건이 온라인 사기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고 덧붙였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