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노던 테리토리(NT) 의회가 자발적 조력사망(VAD)을 합법화하는 '말기 환자 권리 법안(Rights of the Terminally Ill bill)'을 통과시켰지만, 오랫동안 VAD 합법화를 지지해온 유족과 활동가들은 법안이 지나치게 미흡하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p> <p>다윈에 거주하는 캐롤린 마리엇 씨는 2015년 희귀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파트너 존 바나 씨를 21년간 함께한 반려자로 기억한다. 그는 존 씨를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매우 성실했으며, 나처럼 바다 위에 있는 것을 즐겼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존 씨의 마지막 나날들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p> <p>"그는 몸이 완전히 야위어 뼈만 남아 있었어요. 동물도 그런 상태로 살아있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 캐롤린 씨는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p> <p>존 씨는 피질기저핵변성(corticobasal degeneration)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았다. 이 병은 뇌에서 움직임과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으로, 65세의 나이에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처음에는 걷다가 왼쪽으로 자꾸 쓰러지는 증상으로 시작됐고, 전문의를 찾아다녔지만 오랫동안 정확한 진단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진단이 내려졌을 때는 이미 요양원에 입소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악화된 뒤였다.</p> <p>캐롤린 씨는 매일 저녁 요양원을 방문하면서 파트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저녁에 떠나기 전에 항상 호출 버튼을 그의 손에 쥐어줬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버튼조차 누를 수 없게 됐어요." 그는 당시의 무력감을 이렇게 전했다.</p> <p>존 씨는 2014년 VAD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NT에서는 불법이었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었다. 캐롤린 씨는 이번에 통과된 법안이 존 씨 같은 환자에게도 여전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안에 포함된 '12개월 이내 사망 예후' 조건 때문이다. 피질기저핵변성처럼 진행 경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질환의 경우, 의사들이 정확한 예후를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p> <p>"12개월이라는 기준은 말이 안 돼요. 의사들도 의사일 뿐이에요. 존이 앓았던 병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무것도 몰랐어요." 캐롤린 씨는 이 조건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강조했다.</p> <p>이번 법안에는 12개월 예후 조건 외에도 의료 전문가가 먼저 VAD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함구 조항(gag clause)'도 포함됐다. 이 조항은 환자가 먼저 VAD를 언급하지 않는 한 의사가 이를 선택지로 제시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캐롤린 씨는 이 조항에 강하게 반발하며 "왜 숨겨야 하는지, 왜 침묵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p> <p>현재 호주의 다른 주와 준주에서도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의 예후 조건이 적용되고 있으며, ACT만이 별도의 기간 제한 없이 VAD를 허용하고 있다. 함구 조항의 경우 NT 외에는 빅토리아주에만 존재했는데, 빅토리아주는 최근 이 조항을 폐지하는 법 개정을 완료해 2027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p> <p>NT 의회에서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이 두 조건을 삭제하자는 수정안이 일부 의원들로부터 제안됐지만,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캐롤린 씨는 수정안 없이 통과된 법안을 "매우, 매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p> <p>법안은 통과 후 18개월 뒤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캐롤린 씨는 존 씨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 곁에 있지 못했다는 사실도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혼자 떠났다는 생각이 너무 끔찍해요. 항상, 항상 그 생각을 안고 살아요. 그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p> <p>그는 앞으로 존 씨와 비슷한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상황이 너무 나빠지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있고 싶지 않을 수 있어요. 존도 분명히 그랬을 거예요. 올바른 정보를 제공받고, 그 길을 선택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