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호주에서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가운데, 과학자들이 새로운 위협 시나리오에 주목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호주 내 토착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환해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변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p> <p>H5N1은 8개의 독립적인 유전자 분절로 이루어진 RNA 바이러스다. 서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같은 숙주를 동시에 감염시킬 경우, 이 유전자 분절들이 서로 뒤섞이는 '재조합(reassortment)'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유전자 조합을 가진 새로운 바이러스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p> <p>CSIRO(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 수석 연구 과학자 프랭크 웡 박사는 H5N1이 전 세계로 퍼지는 과정에서 이미 이러한 재조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 현지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절을 흡수하면, 그 지역 숙주 종에 더 잘 적응하는 새로운 유전형이나 변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는 바이러스가 더 다양한 조류 종을 감염시키거나, 기존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새들에게 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p> <p>웡 박사는 호주에서도 재조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그 영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호주에서 재조합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p> <p>CSIRO 호주 질병대비센터는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을 통해 바이러스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염기서열 분석팀을 이끄는 매튜 니에브 박사는 과학자들이 호주에 유입된 H5N1 바이러스(B3.2 유전형)가 호주 내 저병원성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환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포유류를 더 쉽게 감염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변이했는지도 함께 모니터링하고 있다.</p> <p>지금까지의 염기서열 분석 결과에 따르면, H5N1 바이러스는 호주 본토에 여러 차례 별도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CSIRO는 최소 6~7건의 독립적인 유입 사례를 확인했으며, 이는 퍼스에서 약 4,100km 남서쪽에 위치한 허드 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니에브 박사는 이 수치가 실제 유입 건수를 과소평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검출되고 샘플이 채취된 사례만 집계됐기 때문이다.</p> <p>한편, 일부 호주 텃새들 사이에서는 다른 양상도 포착됐다. 남호주와 빅토리아주에서 채취한 볏제비갈매기(crested tern)와 은갈매기(silver gull)의 바이러스 유전체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별도로 유입된 것이 아니라, 호주 조류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전파되고 있음을 시사한다.</p> <p>과학자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이미 다른 보전 위협에 처해 있는 취약 종들에 대한 영향이다. 웡 박사는 개체 수가 충분한 종은 대규모 발병에서도 회복할 수 있지만, 이미 개체 수가 위태로운 종은 추가적인 위협을 버텨내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서식지 파괴 등 다른 보전 압박까지 받고 있는 종들은 멸종 수준의 타격을 입을 위험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p> <p>CSIRO 호주 질병대비센터 소장 데비 이글스 박사는 호주 야생동물 보호가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백신이나 다른 대비 활동을 통해 광범위한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CSIRO는 소형 조류를 대상으로 백신 시험을 진행했지만, 주사형 백신은 두 차례 접종이 필요해 대규모 야생 조류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이글스 박사는 "백신 접종은 위협에 처해 있고 포획이 가능한 종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p> <p>이글스 박사는 지속적인 검사와 모니터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검사를 하지 않으면 바이러스 염기서열의 변화를 추적할 수 없고, 인체 전파 위험을 높이는 변이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p>